독일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Op. 45)
레퀴엠(Requiem)의 정식명칭은《죽은 이를 위한 미사곡》이지만 가사의 첫마디가 ‘레퀴엠(requiem,안식을…)’으로 시작되는 데서 이와 같이 부르게 된 것이다. 진혼곡, 또는 진혼미사곡 등으로 번역되어 쓰이기도 한다. 옛날부터 가톨릭교회에서 그레고리오성가로 불리었으나 15세기부터는 다성부로 된 레퀴엠도 나타났다. 또 1600년 이후는 독창 ·합창 ·관현악으로 이루어진 대규모의 작품도 만들어졌으나 점차 연주회용의 성격이 짙어져 갔다. 근대에는 모차르트(미완성), 케르비니, 베를리오즈, 베르디, 포레 등의 작품이 유명하다. 이 밖에 루터교회나 성공회의 전례를 위한 것, 그리스교회의 전례에서 죽은 이를 위한 레퀴엠도 있다.

그러나 브람스의 《독일레퀴엠》은 힌데미트의 《레퀴엠》, 브리튼의 《전쟁레퀴엠》 등과 같이 교회의 전례(典禮)와는 관계없는 연주회용이다.

연주회용인 브람스의 레퀴엠은 독일진혼곡(Ein deutsches Requiem)이라고도 한다. 브람스가 약 10년에 걸쳐 작곡, 1868년에 완성된 것으로 모두 7곡으로 되었다. 일반 레퀴엠과는 달리 가사는 라틴어가 아니라 루터가 성서를 번역했던 독일어로 그대로 쓰고 있다. 이는 다른 레퀴엠과 달리 가톨릭교회의 미사에서 부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음악회용으로 작곡한 것이며, 분노의 날, 최후의 심판, 부활의 사상을 표현한 것이 아니라 죽음에 의하여 남게 된, 슬픔에 잠긴 사람들에게 위안을 주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하여 작곡한 것이다.

헤테로포니에 의한 환각
인간이 만든 여러 악기가 있지만 사람의 음성을 따라 올 악기가 없다고 했다. 그러나 그 악기 역시 갈고 닦은 연주 실력이 이를 뒷받침하지 못하면 자칫 듣기 싫은 소음이 될 수가 있다. 특히 독창이 아닌 합창의 경우. 의도된 절제에 따른 화음(和音)에 의한 헤테로포니(동일선율을 많은 사람이 동시에 불렀을 때 다른 음이 생기는 현상)는 쉽게 경험하기 어려운 일이다. 이 헤테로포니는 듣는 이에게 색다른 감동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몇 해 전 러시아의 코사크(Don Cossak)남성합창단이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음악으로 귀에 익은 ‘백학’을 불렀을 때 이와 비슷한 감동을 받았었는데, 순천시립합창단의 독일레퀴엠(Ein deutsches Requiem, Op. 45)에서 청중의 이해를 돕기 위한 영상자막에 나타난 여러 영상들(삼풍백화점 붕괴 장면,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만나는 장면, 5.18민주항쟁의 계엄군의 진압과 이에 따른 주검 장명 등등) 때문이었을까? 합창단과 악기연주자를 몰고 가는 지휘자 이병직의 떨림에서 죽은 이들의 혼령이 떠도는 듯한 느낌에 전율을 느꼈다.

조임과 풀림의 미학
여타 음악 역시 비슷하지만 특히 합창음악의 경우 지휘자의 지휘봉의 항해는 사람의 목소리와 악기의 소리를 천변만화(千變萬化)하게 한다. 

브람스의 ‘독일레퀴엠’은 딱딱한 독일말이면서도 죽음을 위한 노래라기보다는 부드러운 정감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하늘나라를 묘사한 제4곡의 경우, 지휘자는 독일말의 딱딱함을 정감있고 온화한 느낌이 드는 말로 바꾸어버린 듯한 느낌을 받게 하였다.

천둥번개가 치는 듯하다가도 온화한 봄날 나비가 넘나드는 모습을 느끼게 하는 ‘조이고 푸는’ 가운데 완벽한 하모니로 합창음악의 정수(精髓)를 보여준 순천시립합창단 이병직 상임지휘자와 합창단원의 예술적 완성미에 갈채를 보낸다.

통상적으로 순천시립합창단은 1년에 50여 차례의 무대를 가진다고 하는 데, 이를 세분해보면 거의 1주일에 한번 꼴로 무대에 선다고 볼 수 있다. 그런 와중에도 이런 멋진 앙상블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합창음악만을 고집하며 ‘영혼을 울리는 감동의 메신저’라는 별명을 얻고 있는 지휘자 이병직과 순천시립합창단의 절묘한 궁합(宮合)에 따른 것은 아닌지.

합창음악의 정수(精髓)를 보여 준 순천시립합창단과 무엇보다 성숙된 감상문화를 보여준 1천 여 명 가까운 청중들에게도 박수를 보내면서, 풍요로움을 구가하는 오늘이 있기까지에는 식민국가에서 탈출하기 위한 의로운 투쟁에 따른 죽음, 이데올로기에 의한 갈등, 민주를 갈망하며 투쟁하다 죽은 죽음, 생각지도 못한 재난과 재해로 죽은 죽음 등 다양한 죽음에 대한 죽은 자는 물론이요, 살아남은 자 역시 애통해 할 수밖에 없는 죽음이 많다. 이에 대해 6월 호국보훈의 날을 맞이해서 순천시립합창단은 평화기원음악회 ‘독일레퀴엠’으로 죽은 이들에겐 영원한 안식이 살아남은 이들에게는 또 다른 평안함을 안겨주기에 충분한 연주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