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인한 한발과 집중호우 등 예측불허한 날씨는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촉구하는 징후와도 같다.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 양 연일 계속되는 이른 더위에 한전에서는 전기절약에 대한 캠페인이 한창이다. 에너지 절약은 기후변화와 선순환적 관계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어지간한 더위와 추위에는 전기를 비롯한 화석에너지 절약은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늘 ‘강 건너 불 구경’과도 같은 마음이어 개운찮은 마음이 들 대가 많다. 이렇게 더위로 인해 심신이 힘들어 지는 시간들이면 이열치열(以熱治熱)로 더위를 잊던 선인들의 지혜가 더욱 예사롭지 않게 여겨진다.

어쨌거나 이른 더위에 6월 초순에도 해수욕장이 개장했다는 소리가 들리며, 휴일엔 계곡으로 피서를 나서는 사람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우거(寓居)가 있는 석현동 향림골에도 적은 수이기는 하지만 휴일엔 피서객을 만나게 된다.
숲 깊은 이 석현동 산골짝에는 졸졸졸 흐르지만 가뭄에도 물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소나무를 스치는 바람소리와 계곡을 흐르는 물 소리에 더위를 쫒으며, 선시(禪詩) 한 편을 떠 올린다.
고려시대의 진각국사 혜심(慧諶, 1178-1234) 스님의 시로 제목은 ‘밤중에 앉아 대중에 보인다’는 의미의 夜坐示衆으로 본문은 “吟風松瑟瑟/落石水潺潺/況復殘月曉/子規淸叫山”이다. 이를 직역하자면 “음풍송슬슬(吟風松瑟瑟)은 소나무 가지 사이로 바람이 지나가고, 낙석수잔잔(落石水潺潺)은 시냇물은 바위아래로 잔잔하게 흐른다. 황복잔월효(況復殘月曉)는 새벽녘 서산으로 넘어가는 달빛은 희미한데, 자규청규산(子規淸叫山)은 두견새 맑은 울음소리 산에서 들려온다.”로 풀이할 수 있다. 하지만, 고려 말 대선사로 추앙받던 진각국사 혜심 스님은 “소나무는 바람과 만나 노래를 만들고, 시냇물은 바위 아래서 잔잔하다는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 인연 어느 것 하나 소중하고 고맙지 않은 것이 있겠는가? 사물과 사물이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내는 그 오묘한 섭리. 그 섭리를 잘 알겠다는 듯이 새벽녘 빛은 희미한데, 두견새의 해맑은 울음소리가 산에서 들려온다.”며 ‘스님은 한밤중에 혼자 가만히 앉아 소나무를 지나가는 솔바람 소리, 시냇물의 잔잔한 물소리를 듣고 있었다. 어느 것 하나 부처님의 법문이 아님이 없었겠는데, 이 깊은 밤 나 말고도 깨어 있는 정신이 있어 해맑은 울음을 밤새 울고 있더란 것이다.’로 ‘잠들지 말고 깨어 우주에 가득한 부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라”는 의미로 유추해 본다. 그도 그럴 것이 불교가 국교인 고려시대. 더욱 고려 말에는 스님들의 위치는 사회지도층과 다름 아니어 국정에도 관여하였을 것이다. 그런데 수행을 하는 수도자들이 마음 다스리는 공부보다는 엉뚱한 일에 관심을 많은 사회적 풍조를 보고 수행하는 스님들에게 화두를 던졌던 것으로 생각해 본다.

최근 19대 국회의원의 임기가 시작되었음에도 아직 개원조차 하지 못한 가운데, 정말로 민초들의 피눈물과도 같은 세비만 축내고 있다. 미국과의 FTA발효에 따른 후속 조치는 물론, 때 아닌 한발로 인해 70%가 넘는 농작물의 피해로 패인 주름살에서 피고름이라도 흐를 것만 같은데도 말이다. 모름지기 대통령은 물론 목민관을 비롯한 사회 지도층 인사는 그에 따른 책무를 잊어서는 안 된다. ‘염불 보다는 잿밥’에 더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지도자가 본연의 자세를 가지지 못하면 이 사회는 방향을 잃고 엉뚱한 곳으로 흐를 수밖에 없다.

세계에서 7번째로 20-50클럽에 등록된 대한민국은 이제 세계적으로도 책임을 지는 나라가 되었다. 그런데도 정치지도자, 종교지도자를 비롯한 사회적 지도계층의 도덕적 해이는 시름 깊은 민초들의 마음을 더욱 아프게 하고 있다.

힘들게 파종한 농작물이 타들어 가는 가뭄과 절로 입이 벌어지는 더위에도 차마 포기하지 못하고 물꼬를 트기 위해 새벽 잠을 설치며 논밭으로 향하는 민초의 마음. 이 민초의 마음을 헤아려 지도자들은 본연의 책무를 다시금 되새기기를 바래본다. 그래서 밤중에 깨어 앉아, 밤을 잊고 노력하여 자규(子規)와 같이 민초들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는 희망의 노래를 들려주기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