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만 같아라(加也勿 減夜勿 但願長似嘉俳日)’는 김매순의 열양세시기(冽陽歲時記) 8월 중추(中秋)에 처음 나오는 말로 ’만물이 다 성숙하고 중추는 또한 가절이라 하므로 민간에서는 이날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아무리 가난한 벽촌의 집안에서도 예에 따라 모두 쌀로 술을 빚고 닭을 잡아 찬도 만들며, 또 온갖 과일을 풍성하게 차려놓는다. 그래서 말하기를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늘 한가위 같기만 바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지구기후변화에 따른 집중호우로 인해 농작물, 특히 제수용으로 쓸 과일이 귀해 상차림 비용이 만만치 않아 서민들의 근심이 크다. 또한 1천조 원 가계부채시대에 접어들자 미국의 모기지 사태에 놀란 책상물림 정책제안자들로 인해 정부의 서민가계대출중지로 서민들의 생활형 대출이나, 주택구입 등 나름대로 꿈을 키우고 근면 성실한 생활을 하는 많은 서민들에게 아픔을 주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맞이하는 올 2011년 추석에 과연 ‘더도 말고 덜도 말고’란 말이 나올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그렇더라도 추석 명절은 다가오고, 차례상은 차리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전통적인 가족주의가 붕괴되어 핵가족화, 특히 젊은 세대주가 많은 오늘의 명절 상차림에서 늘 어떻게 차릴 것인가 고민이 많다. 인터넷을 뒤져 보지만 각양각색의 예법에 오히려 혼란스럽기만 하다.

우리나라 속담에 ‘남의 제사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라는 말이 있는데, 거꾸로 해석하면 집안마다 음식을 차리는 방법이 다르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어떤 의미에서는 제사상을 차리는 데는 하나의 정답이 없다는 말의 뜻하기도 한다. 그런데 지방마다 집안마다 제사상을 차리는 방법에 있어 공통점이 있으니, ‘첫째, 제사상은 북쪽을 향한다. 둘째, 좋은 음식은 혼백(지방문, 사진) 가까이 놓는다. 셋째, 좋은 음식은 혼백의 오른쪽에 놓는다. 넷째, 모든 음식은 홀수로 놓는다.’는 것이다.

제사상은 북쪽을 향한다.
집을 지을 때 남향을 따르는 것은 겨울에 햇볕이 잘 들뿐 아니라 여름철에 더위를 최소화할 수 있는 오랜 경험에서 체득한 생활과학이다. 이에 따라 높은 사람이 집안의 안쪽에 앉으면 자연스럽게 등이 북쪽을 향하게 된다. 따라서 제사를 지낼 때에도 혼백의 등이 북쪽을 향하도록 앉으니 자연히 제사상은 북쪽을 향하게 된 연유에서 파생된 결과다. 하지만 주거문화가 바뀌어 아파트 생활이 일상화된 상황에서는 혼백이 거실의 가장 안락한 장소인 소파에 앉도록 소파 앞에 상을 차리는 것이 합리적인 생각일 것이다.

좋은 음식을 혼백의 가까이, 오른쪽에 놓는다.
차례상이나 제사상에서 혼백의 기준에서 맨 먼저 놓은 것은 국과 밥이고 그 다음에는 좋은 음식(혹은 비싼 음식)을 가까이 놓는다. 또한 어동육서(魚東肉西 - 생선은 동쪽, 고기는 서쪽), 두동서미(頭東尾西 - 생선의 머리는 동쪽, 꼬리는 서쪽)라는 말에서 나타나듯이 생선보다 고기가 예전에 더 비쌌기 때문에 북쪽에서 보면 서쪽이 혼백의 오른 손이 먼저 닿고, 생선의 머리보다 꼬리 쪽이 주로 사용하는 오른손 가까이 있어야 먹기 편하다는 의미에서 오른쪽에 놓는 것이다. 따라서 어떤 격식보다는 혼백의 기준에서 가까운 오른편에 좋은 음식을 놓는다고 하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길한 숫자 양(陽)의 수 홀수와 향의 의미
음식을 홀수로 놓은 것은 음양설(陰陽說)고 관련이 있다. 홀수는 양의 숫자이고, 짝수는 음의 수이다. 설날(1월1일), 삼짇날(3월3일), 단오, 백중(7월7일) 등 음력의 홀수가 겹치는 날을 명절로 정한 것에서 나타나듯이 양의 숫자를 길(吉)한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혼백이 음의 숫자인 짝수로 음식을 준비한다고 해서 못 먹는 것은 아니나 기왕이면 좋은 숫자(양의 수)인 홀수로 놓는다고 생각하면 편할 것 같다.
한편, 차례나 제사 때 향을 피우는 것은 부정을 깨끗이 하는 정화 기능과 신성을 상징한다. 향을 피우는 것은 인간 삶의 더러움을 털어내고 조상신이 와서 앉을 수 있는 순수한 공간을 만들기 위함이다. 향이 신계(神界)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향은 신과 인간의 교통매개체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마음가짐
차례나 제사를 지내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위에서 열거한 복잡한 형식과 절차가 아니라 마음과 정성이다. 일 년에 몇 차례 가족이 모두 모여 돌아가신 분을 기리며 서로 간에 음식을 나누어 먹음으로서 가족 간의 사랑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는 명절증후군이라고 해서 명절이 되면 몸이 아파오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족을 위해 일 년에 몇 차례만 희생한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그런 병은 사라지지 않을까?